뿌리를 찾아서

자신의 뿌리를 찾는다는 건 당연한 일이리라.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지낸다. 후에 내 자손들이 조상에 대해 묻는다면 뭐라 답해줄 것인가?

점점 우리의 뿌리, 조상에 대한 관심이 없어지는 것 같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려가기 때문일까.

南原尹氏 文孝公派 二十六世孫

윤씨는 옛 문헌상에 149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현재는 44개의 본관이 있으며 이중 11개의본을 제외한 나머지 본관의 유래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으나 해평, 무송, 칠원, 해남, 평산을 제외한 모든 본관은 파평 윤씨에서 분관하였다고 한다. 윤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592명에 상신 18명,문형(대제학) 40명, 왕비(폐비 1명 포함) 6명, 부마 7명, 봉군 7명을 배출하였다.

파평윤씨(坡平尹氏)의 시조 윤신달(尹莘達)은 태조 왕건을 도와 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건국하는데 공을 세운 개국공신으로서 태자를 교육시키는 태사삼중대광에 봉해졌다. 그의 5세손인 윤관(尹瓘, 1040-1111) 장군은 고려 문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고 1107년(고려 예종 3년)에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편성한뒤 여진정벌에 나서 적 5천명을 죽이고 130명을 생포하는 등 북진정책을 완수한 공으로 영평(파평)백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파평으로 하였다.

남원윤씨(南原尹氏)의 시조 윤위(尹威)는 윤신달(파평윤씨의 시조)의 8세손으로, 1176년(고려 명종 6년) 국자박사를 거쳐 기거랑, 이부낭중, 예빈소경 등을 지냈고, 남원에서 복기남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이을 평정하여 그 공으로 남원백에 봉해졌고 남원 땅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후손들이 그곳에서 살면서 파평 윤씨에서 분적하여 남원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예전에 어디선가 보고 옮겨온 글인데, 원본 글의 주소를 잃어버렸습니다. 혹시 이 글의 원본 주소를 아는 분이 계시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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